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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어제 할머니 산소를 다녀왔다. 마음이 갑갑해서 아빠보고 절에 가자고 할려고 했으나, 할머니 산소에 가서 잡초를 정리할거라는 말에 나도 따라나섰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할머니 산소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친척들이 있으면 불편해서 가기 싫었다. 어제는 아빠와 단 둘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따라나선 것 이다. 새벽에 출발해 휴게소에서 아침으로 우동도 사먹고, 산소 올라가서 먹을 과자와 음료수도 사고,  할머니 할아버지께 드릴 과일과 막걸리도 샀다. 

산소에 올라가기전, 산소 바로 근처에 있는 작은 할머니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어렸을 때, 집 앞 개울가에서 사촌 동생들이랑 놀던 기억, 작은 할머니집 벽을 기어가는 무당벌레를 보고 신기해하던 기억들이 났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강아지가 꼬리치며 반겼다. 꼬리를 흔드느라 엉덩이가 같이 들썩거리는게 너무 웃기고 귀여웠다.

산에 올라가기에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는데, 시골집 특유의 냄새가 확 났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시는 집에서 주로 맡을 수 있는 냄새인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나서 한번도 맡은 적이 없었다. 그 냄새에 묘하게 기분이 안정이 되었다.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오자, 작은 할머니께서 시원한 식혜를 떠주셨다. 도시에서 먹는 음식에 알맹이처럼 항상 들어있던 맛이 없었다. 그게 조미료 맛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맛이 하나도 안나고 그냥 시원하고 달았다. 숟가락으로 밥알까지 싹싹 긁어서 먹은 후에 낫과 호미와 삽을 챙겨서 나섰다. 

아빠 차로 산소 입구까지 들어갔다. 나는 호미 하나만 쥐고, 아빠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정글같은 산길을 낫으로 베면서 길을 만들면서 산소로 올라갔다. 길도 만들어져 있지 않고, 경사도 가파르기 때문에,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힘이 너무 들었지만, 속으로 할머니한테 말을 걸면서 올라갔다. 

작은할아버지 산소에 먼저 가서 막걸리를 종이컵에 부어 올리고 두번 절을 한 후 막걸리를 산소에 부었다. 증조모 산소에 가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인사를 드린 후에,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왔다. 신문지를 펼쳐 그 위에 사과, 토마토, 떡을 올렸다. 막걸리도 두 잔 준비해서 올린 후에, 아빠와 절을 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속으로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 저 왔어요. 오랜만에 와서 죄송해요.' 라고만 말씀 드렸다.

나는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나한테 가지는 존재감이 큰데,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른다. 엄마보다 아빠와 친하지만, 아빠보다 엄마가 나한테 존재감이 큰 것과 같은 것 일까.  그런 이유도 있을 것 이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까지의 과정을 눈 앞에서 다 지켜봤기 때문에 더 그런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상보다 잡초가 거의 없어서 아빠가 과자나 음료수를 먹으며 소나무 그늘 밑에서 쉬라고 했지만, 그냥 할머니 산소 바로 옆에 앉아있었다. 배가 아팠었는데, 햇빛이 정면으로 들어오는 곳에 앉아있다보니, 적당히 뜨거워서 찜질이 되어 배가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 옆에 앉아서 폰으로 재밌는 영상도 보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은채로 누워있기도 했다.

할머니 산소 위에 아주 작은 노란 꽃이 혼자 피어있길래, 그것을 확대해서 찍어서 남기기도 했다. 산소 위로 올라가 소나무 그늘에 앉은채로 예쁘게 생긴 솔방울들을 줍기도 했다. 솔방울도 모양이 참 가지각색이었다. 아주 작아서 귀여운 솔방울, 사람들한테 밟힌건지 한쪽 면이 눌린 솔방울, 꽃 모양처럼 펼쳐져 있는 솔방울, 내 마음을 뺏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길가다 본 귀여운 강아지, 혹은 도서관 올라오는 아스팔트 계단 사이로 핀 작은 꽃과 같은 것 들처럼 말이다.

두시간 가량 산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내려오는 길에, 아빠는 둥글레 뿌리, 부지깽이 나물 같은 것을 채취했다. 진짜 온 사방이 다 잡초여서 정글 한가운데에 서있는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빠가 한 나무를 가리키며 어릴때 할머니와 함께 심은 뽕나무라고 해서 신기했다. 그 어린 남자아이가 커서 아빠가 되어 딸과 함께 다시 온 것이 아닌가. 나는 핸드폰 배터리도 없고 심심해서 호미로 땅을 파고 다시 덮고를 반복했다. 그 단순한 과정이, 재밌게 느껴졌고, 그 과정에서 풍겨오는 흙냄새도 좋았다.

그렇게, 다시 작은 할머니집에 내려와 옷을 갈아입었고 밥을 차려주셔서 먹었다. 하루종일 제대로 된 밥을 안먹어서 배가 고파서 그런것일까, 작은 할머니 음식솜씨가 좋으셔서 그런 것일까. 밥이 너무 맛있었다. 상추에 밥을 올려서 된장을 놓고 싸먹는 것도 맛있고, 바삭바삭하고 달달한 호두멸치볶음도 맛있고, 너무 잘익어서 새콤달콤한 묵은지도 맛있었다. 아빠가 맨날 면밖에 안먹는 애가 왜 그렇게 밥을 잘먹느냐고 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맛있게 잘 먹었다. 나를 위한 음식이란 이런거구나. 맛도 있고 무엇보다 건강한 음식, 내 속까지 들어와서 치유해주는 음식. 

식사를 다 끝내고 커피 한잔을 한 뒤에, 과수원에서 일하시는 삼촌들께 인사드리고 나서, 작은할머니가 직접 담그신 고추장과 간장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산에 갔다온것이 피곤했던지 차 안에서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어제와 오늘의 괴리감이 너무 커서 내가 어제 다녀오긴 한건가? 싶기도 하다. 여행 다녀오신 분들이 느끼는 후유증과 비슷한 감정인거 같다. 괜히, 꼬리를 프로펠러마냥 돌리던 강아지 동영상도 보고, 예쁜 솔방울 사진도 보며 어제 하루를 되돌아본다. 모두가 그런 힘으로 다시 하루하루를 살아갈 힘을 내는 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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