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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래도 되는 것은 없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는 '원래 그렇다'는 말 이다. 대개 그 말은, 그 사회의 문화나 어떤 예술성을 띄는 장르를 나타낼때 쓰인다. 그 중에서도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 중에, 어렸을때부터 이해가 가지 않았던 관습들이 참 많았다. 나는 내가 어떤 일을 왜 해야하는지 이해도 되지 않는데 그냥 '원래 하는 거니까 해'라고 할 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하지 않으려고 고집 부렸던 것  같다. 

첫번째는, 사교육 의존 문화였다. 공부를 잘하지는 않지만 '남들 다 학원 다니니까' 학교 내신관리를 위해서 입시학원을 어릴 때부터 다녔었다. 중학교 2학년 즈음에, 문득, '학교에서 치뤄지는 시험은 학교 선생님들이 출제하시는건데 왜 나는 입시학원을 다녀야 하지? 학교에서 학교 선생님이 가르쳐주시는 방과후수업을 들으면 안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생각을 충분히 엄마께 말씀드렸고, 엄마께서는 허락해주셨다. 하지만 나를 따라서 3명의 친구가 줄줄이 학원을 그만두고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수업을 듣겠다고 나와버려서, 학원 원감선생님은 내가 주도한것으로 오해를 했는지 나를 오랜시간동안 면담을 했다. 원감 선생님이 '다 너를 위한 것 이다. 너 나가면 분명 성적 떨어진다.' 라는 말이 기억난다. 솔직히 웃겼다. 어떻게든 내 마음을 돌릴려고 마음에도 없는 '다 너를 위한 것이다'라는 말을 하는 그 모습이 웃겼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먹은 내 귀에 그 말이 들어올리가 없었다. 나를 따라서 3명의 친구들도 줄줄이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 학원은 내 친오빠도 같이 다니고 있던 학원이었는데, 재밌는 것은 내가 그만두고 나서 우리 오빠보고 네 동생은 왜 그렇냐면서 내 욕을 한 것 이다. 아니 나를 위한다면서 그렇게 내생각 해주시더니?

두번째는, 자율적이지 않은 야간 자율 학습이다. 솔직히 나는 고등학교 때도 공부를 열심히 안했다. 재미도 없고,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런 저런 이유로 그냥 안했다. 그 때 공부를 하지 않아서 후회 했던 적이 아직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전공을 선택하고나서부터는 나는 내가 해야할 공부 몫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야간 자율 학습을 하지 않을 때 다른 미래(예체능 계통도 대학 진학도 딱히 어느 쪽도 목표가 없었던)를 위해서 할 일도 찾지 못해서 그냥 야간 자율 학습을 하고 있는 케이스였다. 내가 좋아했던 과목은 문학과 근현대사였는데, 근현대사 과목은 나름 열심히 했고, 그게 아니라면 책을 빌려와서 읽다 잠드거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지루한 야자시간을 보내곤 했다. 근데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야자 감독 선생님께 걸리면 책을 덮고 공부를 하라는 소리를 맨날 들었었다. 잠을 못자게 하는건 그렇다쳐도 책이라도 읽게라도 해줘야 하는거 아닌가 책도 읽지 말고 무조건 공부만 하라는건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본인들이 내가 중학교 1학년때부터 놓친 기초부터 다시 차근차근 가르쳐줄것도 아니면서. 

세번째는, 대학 문화다. 이놈의 한국사회는 고등학교 졸업해도 달라진게 없다. 대학 생활 문화 중에 힘들었던 것은 크게 두개였다. 체육대회 준비, 축제 준비를 하느라 무조건 막차 탈때까지 연습해야 했던 것과 교수님의 말을 무조건 들어야 했던 것 

우선, 무조건 체육대회, 축제 준비를 하느라 막차 탈때까지 밤늦게 연습해야 하는 것이 싫었는데, 내가 왜 체육대회 연습을 한다고 밤 10시가 다되가도록 남아있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9시에 집에 가던 날, '너네 원래 막차 타고 가야 돼'라면서 웃던 선배 표정이 너무 재수 없었다. 아니 무슨 체육대학도 아니고 내가 체육대회 연습하느라 막차 타고 가야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해가 안된다. 

체육대회 연습까지는 어찌 하라는 대로 잘 했지만, 중요한건 축제 연습이었다. 그 때 우리는 팀을 이뤄서 축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공연 준비 과정에서 선배들에게 준비가 어느 정도 되고 있는지 검사를 맡는 시스템이었다. 검사를 맡을 때, 같이 공연을 준비하던 팀원의 태도 때문에 나까지 표정이 안좋아졌었는데, 그 표정을 또 오해했는지 공연 준비를 하는 것에 불만이 있는 표정으로 비춰져 지적을 받았었다. 그날 이후부터, 그 선배는 인사를 받아줄때마다 똥씹은 표정을 하곤 했다. 중요한건 그 선배도 검사를 맡을때 엎드려서 아예 보지 않았다는 것 이다. '너 원래 표정 그런거 안다, 악의 없는거 안다'면서 달래주던 다른 선배들도 짜증이 났다. 그냥 그 상황 자체가 짜증이 났었던거 같다. 나도 짜증나고 그 선배도 짜증나고. 나는 왜 표정관리까지 안되서 학교생활을 힘들게 보낸 것 일까 가식적으로라도 표정을 관리할줄 알아야 학교생활이 수월했을텐데. 체육대회 준비, 축제 준비를 하느라 밤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지나고나서 보면 다 추억이 된다'는 말 이었다. 추억은 무슨 그것도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해야 추억이 되는거지. 내 스무살을 그 강압적인 대학문화에 지쳐서 보냈다니 억울하다.

그 다음은, 교수님과의 관계 였다. 교수님과의 관계에서는, 실습, 취업과 같은 진로 결정들을 교수님들이 원하는대로 따르지 않으면, 혼내시거나 마음에 안들어하시는 티를 내시곤 했다. 몇년이 지난뒤에도 지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진로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취업을 하느냐 편입을 해서 공부를 더하느냐를 고민하던 나는 편입을 결정했었는데, 교수님은 끝까지 취업을 하도록 의견을 바꾸게 하려고 하셨다. 그 이후로는 묘하게 전공 관련 연수 관련해서 불이익을 받는다던가, 편입 관련 추천서를 받는데 눈치가 보인다던가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전문대 특성상 시간이 없고 빨리 사회로 나와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문화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인생안에서 내 현재고, 내 미래인데, 내가 생각해보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는 주는 것이 좋지 않았느냐는 것 이다. 대학이라는 곳이, 사회에 나가서 독립적으로 세상을 살기전에 주체적으로 생각해보고 결정하는 능력을 기르게 하는 곳 아닌가?  

'나중에 취업하는데 도움이 되니까 무조건 해야 한다' 혹은 '선배들도 다 그랬어, 그러니까 너희도 무조건 해'보다 '취업하는데 이런 준비를 하게 된다면, 이런 것들이 구체적으로 도움이 돼, 그럼에도 니가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면 하지 않아도 돼'가 낫지 않냐는 것 이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무조건 해야 한다? 

네번째는, 젠더(성별) 문화다. 나는 여성의 성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자기주장이 강하면 안된다, 조신해야 한다, 깔끔해야 한다 등등 여러편에 통틀어서 언급해오던 내용이기 때문에 길게 언급하고 싶진 않지만, 결론은 하나다. 

'여성'이기 때문에, '~한다'를 빼버리면 된다. 어떤 프레임에 가두고 행동 방식을 어떤 선 이상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벗어나면 비정상 취급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하다. 사람이라면 자기 주장이 강하면 안되고 조신해야 하고 깔끔해야 한다라는 문장이 누가 봐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처럼 말이다.


학교 성적(공교육)을 관리하기 위해 입시 학원(사교육)을 다니는 것은 어린 내 눈에도 모순처럼 보였고, 자율적인 독서도 보장하지 않으면서, 자율 학습이라 불리는 것은 지금도 웃기다고 느껴지고, 선배들이 해왔으니까, 교수님 말이니까,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말도 여전히 이해 되지 않는다. 이 말은 입시학원을 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야간 자율 학습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선배들, 교수들 말은 무조건 듣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원래 문화가 그러니까,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생각해보고 결정할수있는 권리를 버리고 일단 따르라라는 것이 너무 모순적이고 싫은 것 이다. 그러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건강한 사회 구성원 코스프레하다가, 뒤늦게 자의식이 깨어나서 방황하다가 일을 그만두면 요즘 애새끼들은 의지가 너무 약해라면서 실패자라고 낙인 찍는것이 너무 꼴보기 싫다.

이것이 취업준비생의 열등감에 가득찬 비판어린 시선이라면 그렇게 봐도 좋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위에 글에 보듯이, 나는 어릴때부터 이렇게 생각해왔고,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명의 사람이 다 다르기 때문에 원래 그런 것은 절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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