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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병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 누구는 회사를 가야 해서, 누구는 학교를 가야 해서 싫은 날. 그들이 가야만 하는 곳이 있어서 싫은 날이라면, 나는 가야만 하는 곳이 없어서 싫은 날 이다. 가야만 하는 곳이 있다는건, 일종의 자존감과도 같다. 아빠에게는 내가 아니면 이 집안은 안된다는 가장으로서의 자존감, 엄마에게는 아빠만큼은 아니어도 집안에 보탬이 되고 있다는 자존감, 몇년의 취업준비생 생활을 하다가 취업한 오빠에게는 엄마아빠에게 그래도 당당해질 수 있다는 자존감인 것 이다. 

나는 다른 날 보다 유독 더 이 하루가 무겁게 느껴진다. 아빠가 출근하고, 오빠가 출근하고, 엄마가 출근하고 나면 집 안은 적막만이 감돈다. 침대에 누워서 영혼 빠진 좀비 마냥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두시간 정도를 더 자고 나면, 머리가 부서질듯이 아프다. 점심을 대충 김치볶음밥으로 해먹고, 빨래를 널었다. 이제 봄이라 햇볕은 따스하게 느껴졌지만, 아직 겨울의 느낌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설거지까지 하고 오후 두시가 되서야, 씻기 시작했다. 화장을 하고, 옷을 입었다. 화장을 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 중인데, 화장을 한 얼굴이 참 낯설다. 애 얼굴에 화장을 해놓은 것 같다. 

읽을 책과, 메모할 수 있는 이면지 묶음과 펜, 커피를 챙겨서 집을 나서면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 이른 퇴근을 한 직장인들 반대로 도서관을 향해 걷기 시작하면, 세상의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을 받는다. 휴관일에도 오픈이 되어있는 자유열람실에서 어제 빌린 책을 읽다가 다시 잠들고를 반복하다가, 이면지에다가 '내가 너무 가까이 보고 있는 걸까, 멀리서 보면, 지나고 나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다고 웃어 넘길 뿐 인 걸까'라는 글자를 가득히 적었다. 

왜냐하면, 어제 오빠가 나보고 젊어서 기회가 많아 부럽다고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3살 많은 오빠는 3살 어린 나를 부러워하고, 그런 나는 6살 어린 사촌동생을 부러워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는 왜 이리 서로를 부러워만 하다 죽는 것 일까. 우린 왜 우리 자체로 행복할 수 없을까. 어린 동생을 부러워하는 나를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게, 그래서 행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직장인과 학생들에게 월요일이 또 다시 '한 주의 무게'를 견뎌내야해서 싫은 날 이라면, 이렇게 취업준비생에게 월요일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자신의 삶의 무게'를 체감하고 견뎌내야해서 싫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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