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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내 열등감의 역사는 길어.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고, 지금도 진행 중이지. 열등감을 최초로 느꼈던 날을 기억해. 다섯살 즈음인가, 미술학원 선생님과 함께 그림을 그리던 날 이었어. 선생님은 선이 반듯한 물고기를 그리셨고, 나는 형태가 무너진 삐뚤빼뚤한 물고기를 그렸어. 선생님은 물고기를 잘 그리시는데, 나는 왜 물고기를 못 그리는 것 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형태가 없는 그림도 그 그림대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걸 깨닫게 된건 놀랍게도 몇개월 전 한 유튜버의 그림을 보게 되면서 부터였어. 아무튼 최근에 열등감을 느꼈던 몇가지 사건에 대해 얘기해볼게. 감정이 식은 열등감은 꺼내봤자 와닿지 않을 것 같으니까.

얼마전 명절에 사촌동생이 고3이라고 오지 않았더라. 숙모랑 엄마랑 나누는 대화를 들었는데 인서울을 가고 싶어하고 인서울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대 인서울 하지 못해도 지방 국립대는 가려고 하는 것 같고 문제 없는 것 같았어 작은엄마 폰으로 그 동생 프로필 사진보는데 화장에도 가려지지 않은 앳된 얼굴도, 입은 옷도 참 예뻤어 나보다 더 숙녀같더라고 나는 아직도 이렇게 애 같은데 말이야. 걔는 내가 스물 다섯이 되어서도 이루지 못한 것 들을 스물이 되기도 전에 이룬 것 같고, 무엇보다 앞으로 이뤄나갈 수 있는 시간들이 그 아이에겐 있잖아. 그 기회가 많은 나이가 참 부럽더라.

나랑 서로 상처줄대로 상처 주고 더럽게 끝난 친구가 있거든? 그 친구 프로필 사진을 보는데 기분이 참 묘했어 내가 알던 모습이 남아 있기도 했고, 내가 모르던 모습이 보이기도 했어. 그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내 모습이 자각이 되어 내 자신이 참 초라하기도 하고, 얘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일을, 새롭게 시작해 자기 인생 살기 바빠서 나라는 친구가 있었는지 도 잊어버렸을텐데 나만 여기 이 자리 그대로인것 같고 난 뭐했나 싶더라.

오늘 아침에 아빠 아침을 차려주면서 엄마가 오빠가 취업한 자리가, 정규직이니 비정규직이니를 되게 궁금해하더라고.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였어도 저렇게 궁금해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지금 이렇게 고민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잘하게 된다 해도 엄마가 저렇게 궁금해할까? 싶더라. 엄마는 내가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보다, 얼마나 큰 회사에서 안정적인 자리에 일하게 되느냐가 중요하니까. 그래서 내 고민이 부질없게 느껴졌어. 엄마와 아빠한테도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면 이 고민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엄마의 관점이 그게 딱히 틀리다는건 아니야. 엄마의 그런 생각들이 되게 틀린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냥 너무 다른거야. 나는 그 다른게 슬픈거야. 얼마전인가 나는 엄마한테서 태어났는데, 엄마랑 왜 이리 다를까 싶어서 그냥 너무 슬펐어.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 엄마는 그런거 좋아해. 남에게 자랑하는 것. 난 엄마가 친척들이나, 엄마 친구들에게 내 부족함 점에 대해 적나라하게 얘기하는게 싫었거든. 엄마는 그게 있는 그대로 사실인데 그게 뭐 어떻하냐는 식이였는데, 일단은 내 부족한 점에 대해 얘기하는 거니까 그것도 내가 앞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것이 난 아팠어. 근데 적다보니까 내가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거리가 있는 딸 인가 싶더라고. 왜 부모님들은 다 키운 자식들 자랑하는게 낙이시잖아. 그래서 엄마는 나한테 크게 욕심내는 것도 아닌데, 그 엄마의 욕심에 안 맞춰주는 내가 답답했을 수도 있겠지. 참 못나보이더라 내가.

동물을 좋아해서 인스타그램을 주로 하는데, SNS 특성상 연락처에 등록된 사람의 계정이 뜨거든. 그래서 들어가보게 되었는데, 어떤 친구는 계약직으로 일하던 곳에서 정규직으로 일하게 된 것 같고, 어떤 친구는 미국에 인턴으로 일하고 있고, 어떤 친구는 남자친구랑 연애하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더라. 난 뭐하고 있지?란 생각이 들었어. SNS라는게 참,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나 자신을 갉아먹는 시스템인것 같아. 

마지막으로, 열등감이라는게 암세포와도 같은 것 같애. 없애려고 할수록 더 커져서 나를 죽이는 암세포.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데 사실은 모르겠어. 내가 남들에게 인정받았던 경험을 떠올려서 버텨보거나, 지금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겠지. 사실은 후자가 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 중요한건 '인정'이라는거야. 내 자신이 잘했을때만 인정해주는게 아니라 잘하지 못했을 때 인정해주는게 더 중요하다는 말을 들은적 있는데 정말 맞다고 생각해. 

맞아. 난 정말 요즘 하루하루 딱히 이루어놓은 것 없이 살고 있어. 아침 열시쯤에 도서관 와서, 아르바이트 사이트, 구직 사이트를 의미 없이 돌아다니다가, 인터넷 서핑질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 네시가 되서 집에 가서 늦은 점심을 먹는게 일상의 전부야. 하지만,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 사이트, 구직 사이트를 돌아다닐 때도, 인터넷 서핑질을 하며 시간을 때울 때도, 집에 가서 혼자서 늦은 점심을 챙겨먹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만질때도, 그 모든 순간에 내 마음이 어땠는지 나는 알아. 단 한순간도, 일분 일초도 편했던 적이 없어. 이게 요즘의 나야. 이게 스물 다섯 봄이 오기 직전의 내 모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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